감기약을 잘못 사서 하루를 통째로 날린 적이 있어.

약 이름을 몰라서 못 물어봤어

목이 아파서 약국에 갔어. 문 앞에서 5분쯤 서 있었어.

들어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일본에서 먹던 약 이름을 대봐야 없을 거고, 한국 약 이름은 하나도 모르니까.

한자를 쓰면 통하려나 싶기도 했는데, 약 이름은 대부분 그런 식이 아니더라.

결국 그냥 들어가서 목을 가리켰어. 손가락으로.

약사님이 이것저것 물어보셨어. 기침이 나는지, 열이 있는지.

알아듣긴 했는데 답할 말이 안 나왔어. 그래서 고개만 끄덕이고 목을 한 번 더 가리켰지. 약사님도 더 안 물어보시고 약을 주셨어.

봉투에 뭘 적어주시면서 설명도 해주셨는데, 그건 아예 못 알아들었어.

그 약을 먹고 오후를 날렸어

회의 중에 졸음이 쏟아졌어. 눈이 안 떠지더라고.

나중에 봉투를 다시 봤어. 거기 **"졸음 주의"**라고 적혀 있더라. 한글이라 그때는 안 읽혔던 거야.

감기약 중에 졸린 성분이 든 게 있거든. 이건 일본도 똑같아. 알고 있는 얘기였어.

그러니까 약사님은 할 일을 다 하셨어. 물어보셨고, 적어주셨고, 설명도 하셨어. 내가 받을 준비가 안 됐던 거지.

약 이름은 몰라도 됐어

다음에 갈 때 친구가 알려줬어.

약국에서는 약 이름을 말할 필요가 없대. 증상만 말하면 약사가 골라주는 거야. 그게 약사가 하는 일이니까.

목이 아파요
mogi apayo
아픈 곳 이름만 바꾸면 돼. 머리가, 배가, 이가

이 구조가 다야. 아픈 곳 이름만 바꾸면 돼.

머리가 아파요 / 배가 아파요 / 이가 아파요.

근데 진짜 중요한 건 이거였어

증상만 말하면 절반이야. 나머지 절반은 조건이더라고.

졸리지 않는 약 주세요
jolliji anneun yak juseyo
낮에 일해야 할 때. 이 한마디가 오후를 지켜줘

이 한마디를 안 해서 오후를 날린 거였어.

내가 한 것했어야 하는 것
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킴목이 아파요
아무 말 없이 받음졸리지 않는 약 주세요
약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증상만 말하면 됨

이것도 물어보면 좋아

몇 번 다니다 보니 이 두 개도 쓸모 있더라.

"하루에 몇 번 먹어요?" — 봉투에 적어주시긴 하는데 한글이라 못 읽을 때가 있어.

"밥 먹고 먹어요?" — 이건 진짜 중요해. 빈속에 먹으면 안 되는 약이 있거든.

밤에 아프면 또 다른 문제야

이건 살면서 알게 된 건데, 한국은 약을 약국에서만 팔아. 편의점에서 감기약을 집을 수가 없어.

그런데 약국은 대체로 일찍 닫고 일요일에 쉬는 곳이 많아. 밤에 열이 나면 갈 데가 없는 거지.

그래서 편의점에 안전상비의약품이라고 몇 가지는 놔뒀어. 해열제나 감기약, 소화제 정도. 종류가 많진 않은데 밤에는 이게 전부야.

늦게까지 하는 약국을 찾으려면 심야약국으로 검색하면 돼. 나는 이걸 알기 전까지 밤에 아프면 그냥 참았어.

지금은 단골이 생겼어

회사 근처 약국에 자주 가다 보니 얼굴을 아시게 됐어. 요즘은 들어가면 "또 목이에요?" 하고 먼저 물어보셔.

결국 필요했던 건 문장 두 개였어. 목이 아파요, 졸리지 않는 약 주세요. 이 정도면 대부분 해결되더라.

아플 때 말이 안 나오는 게 제일 곤란한데, 하필 그때는 연습할 기운도 없거든. 그래서 아프기 전에 외워두는 게 맞아.

지금은 약국 문 앞에서 안 멈춰. 그냥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