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앞에서 한복을 빌려 입었는데, 매표소에서 표를 안 팔더라고.
줄을 잘못 선 줄 알았어
친구가 한복을 입자고 했을 때 나는 좀 뺐어. 남자가 그런 걸 입나 싶었거든.
근데 대여점에 가보니까 남자 한복이 한 벽을 채우고 있더라. 짙은 남색, 회색, 흰색. 생각보다 훨씬 점잖았어.
바지가 통이 엄청 넓은데 발목에서 묶여. 위에는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조끼 같은 걸 걸쳤어. 대여점 아주머니가 옷고름을 매주셨는데 그게 좀 이상한 기분이었어. 누가 내 옷을 매준 게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라.
거울을 봤는데 좀 웃겼어. 그리고 좀 멋있기도 했고.
표를 안 팔았어
매표소에 줄을 섰어. 내 차례가 됐는데 직원분이 손을 저으시더라고.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어. 옷을 잘못 입었나.
옆에 있던 친구가 웃으면서 알려줬어. 한복 입으면 그냥 들어가는 거라고.
입장료가 3,000원이니까 큰돈은 아니야. 그런데 옷을 갈아입었다고 그냥 들여보내 준다는 게 재밌었어. 뭔가 초대받은 느낌이었달까.
안이 더 좋았어
들어가서 알았는데, 한복을 입으면 사진이 달라져.
경복궁 안에 사람이 엄청 많았거든. 근데 한복 입은 사람이 절반쯤 돼. 한국 사람도 있고 외국인도 있고. 다들 사진 찍느라 바빠.
나도 처음엔 쭈뼛거렸는데 30분쯤 지나니까 아무렇지 않더라고.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안 봐. 다들 자기 사진 찍기 바쁘니까.
경회루 앞에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 아직도 내 프로필이야.
하루 종일 입고 다녔어
이게 제일 좋았던 부분인데, 한 번 빌리면 다른 궁에도 그냥 들어가.
우리는 경복궁에서 나와서 창덕궁까지 걸어갔어. 거기도 한복이면 무료야. 덕수궁, 창경궁, 종묘도 되고.
하루에 두세 곳을 도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 대여비 한 번 내고 하루를 다 쓰는 거지.
중간에 옷 입은 채로 밥도 먹었어. 식당에서 아무도 안 쳐다봐. 그만큼 흔한 일인 거야.
하나만 알아두면 돼
기준이 하나 있어. 위아래를 다 갖춰 입어야 해.
청바지에 저고리만 걸치거나, 한복 바지에 티셔츠를 입으면 무료가 안 돼. 대여점에서 세트로 빌리면 자동으로 해결되니까 신경 쓸 일은 없어.
나는 이걸 몰라서 대여점에서 위에만 골랐다가 아주머니가 "아래도 입어야 들어가요" 하고 알려주셨어. 물어보길 잘했지.
다음에 가면
또 입을 거야. 이번엔 다른 색으로.
솔직히 처음엔 관광객 티 내는 것 같아서 싫었거든. 근데 입어보니까 그게 아니었어. 한복 입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걷는 게 그날 제일 재밌었어.
경복궁 갈 계획 있으면 한 번 입어봐. 옷값이 아깝지 않아.
혹시 남자인데 망설이는 사람 있으면, 나도 그랬다고 말해주고 싶어.



